“거룩한 두려움”
두려움이라는 단어를 대할 때 우리는 항상 패배자나, 약한 자나, 또는 믿음이 없는 자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실제적으로 예수님도 설교 중에 “두려워하지 말라” “모든 염려를 주께 맡겨라”이런 말씀이 사실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두려움이라는 단어는 믿음이 없는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항상 자신감이 넘치고, 열정적이며, 진취적인 삶이 우리의 자세라고 믿습니다. 맞는 말이지만 사실 늘 그렇지 않다는 사실도 우리가 부인할 수는 없는 이야기입니다. ‘언제나 맑음.’ 좋은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러한 두려움은 반드시 있어야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을 일반적인 두려움과는 구별 짓기 위하여 ‘거룩한 두려움’이라고 굳이 말을 만들고 싶습니다. 즉 두려움도 필요한데 그 두려움의 질은 일반적으로 흔히 우리가 말하는 공포나 좌절의 두려움과는 구별되는 내 안에서 일어나는 두려움입니다.
첫째는 무의미한 삶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내 삶이 아무 의미를 찾을 수가 없을 때 방향의식과 목적의식을 찾지 못하여 기계적인 삶으로 살아가고 있을 때 우리는 이런 상황을 ‘아무 생각 없다’고 표현을 합니다. 아무생각 없는 사람들 많습니다. 이런 무의미한 삶을 못 느끼는 것도 큰일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느꼈을 때 두려움이 있어야 합니다. 이 두려움은 나를 살리는두려움입니다. 내 삶을 보면서 “이러면 안 되는데”라는 두려움은 나를 소생시키는 두려움입니다.
두 번째는 감각이 둔해지는 두려움입니다.
무미한 것도 깨닫지 못하고 영적으로 침체되는 것도 깨닫지 못하고 춤을 춰야하는 상황에도 춤을 추지 못하며 애통하고 통곡해야하는 상황에도 그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하는 무뎌진 상황이 우리의 삶 속에 나타날 때 두려워 하십시오. “내가 왜 이러지? 내가 이렇게 메마른 사람이 되었지? 내가 왜 이렇게 무감각해졌을까?”이런 생각을 하면서 두려워해야 합니다. 우리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감각이 둔해집니다. 예배가 무너지고, 기도가 무너지고, 찬양이 무너지며 감사와 기쁨이 무뎌질 때 정신 차려야합니다.
셋째는 길을 잃는 두려움입니다.
잘 가던 길에서 방황할 때가 있습니다. 길을 잃어버려 어둠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갑자기 인생에 혼선이 올 때가 있습니다. 목자의 음성이 들리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무리에서 이탈하여 홀로 고독하게 야생 동물의 울음소리에 소름끼칠 때가 있습니다. 이때에 두려워해야합니다.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그 길에서 헤메일 때는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 사단에게 먹히는 신호입니다. 길이 아닌 데로 들어왔음이 느껴지면 두려워하며 나오십시오. 길이 아닌 곳에서 호기심과 고집으로 달려가지 마십시오. 두려움으로 그 길에서 나오십시오. 주님께 부르짖으십시오.
넷째는 내 인생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 때문에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초조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닙니다. 남은 시간에 대한 효율적인 헌신의 시간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우리는 시간이 많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시간이 많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얼마큼 살지, 얼마큼 하나님 앞에 쓰임 받을지 우리는 알 수 없는 자들입니다. 이것에 대하여 두려운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 두려움은 우리를 성실하게 만듭니다. 시간을 아끼고 때를 아끼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위의 네 가지 두려움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거룩한 두려움입니다. 이 두려움은 곧 내 신앙과 인생에 대한 긴장을 늦추지 않는 아름다운 자세입니다. 새해가 벌써 한달의 절반이 지났습니다. 두려워할 줄 알면서 삽시다.
'셋 > 주간 목회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전, 도전, 도전 (2월3일 13년) (0) | 2013.02.12 |
---|---|
세월을 아끼라 (1월27일 13년) (0) | 2013.02.12 |
월요일(1월14일 13년) 아이티에 들어갑니다. (0) | 2013.01.13 |
새해를 시작하며 / 1월6일 주보 (0) | 2013.01.06 |
한해를 마무리하며.... (0) | 2012.12.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