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아이티
세계 최고의 도시 뉴욕에서 최고의 문명과 과학을 누리던 사람들이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니 불편해서 몸부림을 친다.
핸드폰이 충전이 안되서 커뮤니케이션이 두절됐다. 컴퓨터를 못해 인터넷이 두절되어 정보를 상실하고 관계를 상실했다.
주변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모른다. 제일 힘들어하는 부분이다.
냉장고가 꺼져서 음식을 쌓아놓을 수가 없어서 그날그날 먹는다.
길거리는 신호등이 꺼져서 아주 위험한 상태이다.
전기가 없으니 가게도 문 열일이 없다 그래서 할 일이 없다. 노는거다. 이것이 태풍으로 인한 뉴욕의 상황이다.
이런 곳이 아이티다.
그런데 그들은 큰 불편을 못 느끼고 산다.
신호등은 꺼진 것이 아니라 신호등은 아예 없다. 그래도 아홉 차례를 선교 갔어도 교통사고 일어난 것은 한번 도 못 봤다.
불편한대로 받아들이며 사는 그들의 노하우가 그들에게 몸에 젖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들은 그것이 불편인지를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나는 뉴욕에 있으면서 아이티에 사는 것 같다.
교인들이 다들 힘들어하고 있다.
삶의 모든 영역을 질서 정연하게 삶을 편리하게 짜여 만든 공간에서 살던 자들이
그것이 일순간 두절되니 힘들어들 하고 있다.
얼마나 편리에 길들여져 있던 우리이기에 이것이 빼앗기지 않으려고 이것이 우리의 기도의 제목이 되어버린 것 같다.
이것이 우리가 원하는 삶의 질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불편한 것을 불행한 것으로 생각했던 우리들이다.
더 편리한 것을 위해서 노력했고, 더 질서정연하게 짜여진 소름끼칠 정도의 편리주의가 우리가 원하는 목표였던가?
그래서 우리는 이번 태풍이후 우리가 앞으로 누릴 더 편리함이 깨지지 않기 위한 더 강한 안전 장치를 다시 또 만들 것이다. 그것이 또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우리의 삶의 목표가 될 것이고 기도의 제목이 될 것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의 내면세계와 영적인 성숙과 아울러 거룩한 인격과 사랑, 그리고 나눔과 구제 그리고 선교.....
이런 것을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불편하게 살자는 것이 아니다.
불편한 것이 불행한 것은 아니고 편리한 것에 목표를 둔 기도제목이 진정한 기도의 제목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 아이티에 가서 섬기고 와야한다. 그 땅에 가서 감사를 알고, 편리가 무엇이며 이 편리를 어떻게 나눌 수 있으며 섬김의 도구로 쓸 수 있는지 말이다.
뉴욕에서 아이티를 경험한다.
최고의 경제와 문화의 도시 뉴욕사람들 행복지수가 제로다.
그러나 후진국 섬나라가 행복지수 일위라는 것이 이해가 간다.
험한 태풍이 지나고........ 한줄기 소망의 생각을 키워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