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 8일 / 예수마을교회 주일3부 청년부 예배 설교
영향력(2) (마태복음5:13-16절)
지난 주는 영향력이란 무엇인가? 에 대하여 말씀드렸습니다.
영향력은 에너지라는 말로 사람의 영육혼에 미치는 진정한 에너지는 말씀 에너지로
오직 예수그리스도라는 이름 안에 있는 에너지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것으로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셨고 우리의 마음의 에너지로 영향력의
근원이되며 우리의 영에 임하여 생령으로 역사하는 영적인 사람이 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은 두번째 '영향력을 행사하라' 라는 제목입니다.
영향력있는 크리스챤이 되십시요
이 말은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자가 되십시요'라는 엄청난 축복의 선언입니다.
한번 사는 인생, 나 하나 먹고 사는거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있고
사람을 살리고, 나라를 살리고, 세계 위에서 쓰임 받는 자가 있습니다.
그런 영향력있는 청년들이 되겠다는 독한 마음먹는 자들이 되기 바랍니다.
첫째: 스스로 영향력의 그릇을 만들라
"하나님이 하실 것이다"이런 막연한 기대를 하지마십시요
내가 해야 하나님도 하십니다. 내 자신이 하나님을 향하여 독하게 마음먹고 헌신하고 결단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하나님도 일하기 시작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요
막연하게 하나님 앞에 쓰임 받기를 원하여 기도하는 정도가 아닙니다.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영향력 있는 명품그릇으로 만들겠다는 강한 근성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대한 강한 의뢰가 있어야 합니다.
내가 나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데 누구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겠습니까?
하나님을 향한 자기고백과 확신이 분명한 자입니다.
시편 46:1-3절 /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하나님에게 강하게 묶여있는 자신감입니다.
자기 자신이 하나님으로 인하여 자신을 존귀하게 여기는 자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내 안에는 하나님의 뜻과 섭리하심이 있다.
하나님은 나를 위하여 지금도 일하고 계신다. 이런 자신감이 곧 영향력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누가 나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기근이나 핍박이라 할찌라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자가 없다"라는 에너지로 가득찬 그릇입니다.
이것은 근성과 같은 것입니다.
근성하면 뛰어난 인물은 다윗입니다.
다윗은 한민족에게 그리고 성성의 위대한 인물로 영향력을 끼친 인물입니다.
어려서부터 하나님에게 강하게 붙어있는 근성입니다. 블레셋의 골리앗과 싸우는 근성
도망자의 사람에서도 실족하지 않고 13년을 견뎌내는 근성….
다윗의 이름은 온 인류에게 영향을 미치는 이름입니다.
인간이면 인간의 근성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크리스챤이면 크리스챤의 근성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그 근성을 키우세요
반 컵의 물로 생존하기
유대인들이 600만 명이나 학살당할 때, 그 학살하는 일을 집행 하는데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은 바로 독일군이었습니다.
독일군들의 양심이 가장 큰 방해거리입니다.
어떻게 같은 사람을 생체실험하며 잔인하게 인간이 인간을 죽일 수 있겠습니까?
그 양심 때문에 히틀러의 살인 계획이 지연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히틀러는 유대인을 학살하는 독일 군인의 양심을 편케하기 위한
고도의 심리전을 전개했습니다. 그것은 유대인들을 잡아 가둔 포로수용소의 화장실을
의도적으로 짓지 않은 것입니다.
3만 2천명이 수용되어있던 여자포로수용소의 화장실은 단 하나였습니다.
거기다가 화장실에 가는 시간은 하루에10분 씩 두 번만 허락했습니다.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수용소 자체가 화장실이 된 것입니다.
악취와 비위생. 그들은 자신들이 식기로 사용하는 그릇에
대소변을 받아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돼지우리의 동물 그 자체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독일군들의 복장은 어떻습니까? 칼같이 바지를 다려 입고
흰 장갑을 끼고 검정구두를 반짝반짝 닦아 신었습니다.
한 독일군이 장교들에게 물었습니다.
“이왕 죽일 사람들을 왜 저렇게까지 합니까?”
"사람을 죽이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개나 짐승을 죽이는 것은 쉽다.
더구나 개구리를 죽이는 것은 더 쉽다.” 무슨 뜻이냐 하면,
인간은 자존심을 잃어버리면 짐승이 되는데 그러면 죽이기가 훨씬 용이하고
죽이는 사람이나 죽는 사람도 편하다는 것입니다.
“차라리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게 낫지.” “차라리 죽여주는 게 저를 위한 것이지.”
이런 고도의 심리전으로 독일군들의 양심을 마비시키는 작전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포로수용소, 아니 돼지우리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까요?
이 안에서 생존하는 것은 기적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유대인들 안에서 생존의 법칙이 생겼습니다. 아니 터득했습니다.
첫째는: 먹는 것 앞에서 동물이 되지 말자. (빵의 법칙)
부스러기 하나라도 더 먹어야 살 수 있습니다. 콩 한 조각에 생사가 걸렸습니다.
자연히 포로수용소 안에서는 살아남기 위해 남의 빵을 훔치는
동물적인 생존경쟁이 생겼습니다. 그들끼리 법칙을 세웠습니다.
남의 빵을 훔치는 자는 죽인다는 법칙이 생겼습니다.
그래야 모두가 함께 살고 독일군 앞에서 짐승같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이해가 가는 법칙입니다.
그런데 두 번째 법칙은 이해가 안가는 법칙이 생겼습니다.
둘째: 생존하려면 매일 세수를 해야 한다.
멋을 내라 옷은 자기를 위하여 입는게 아닙니다.
남을 위하여 입는 자신의 자존심이다.
그러나 세숫물이 없지요. 기록에 따르면 새벽 4시 반이면 커피 한 잔 씩을 배급했다고 합니다.
말은 커피지만 썩은 물과 같은 따뜻한 물 한 컵입니다.
그들은 생존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모두 마시면 안 된다는 법칙을 깨달았습니다.
반 컵은 마시고 반 컵은 세숫물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옷을 찢어서 반 컵의 물에 천을 적셔서 이를 닦은 다음
그것을 다시 빨아서 얼굴을 씻고 몸의 구석구석을 씻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야만 살 수 있습니다. 수용소에 들어오면 그것부터 배웁니다. “살려면 세수를 해라.”
사람들은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돼지우리 같고 화장실 같은 이런 시설에서 세수가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이냐!
닦는다고 이것이 닦아지나? 위생적이길 하나,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렇게 말하는 이들은 한 컵의 커피를 모두 마셔버리고
며칠 못 가서 모두 죽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하시겠습니까?
독일인은 유대인을 짐승으로 전락시키려고 했습니다.
인간이길 포기하게 만든 것입니다.
그들 스스로 죽든 아니면, 양심에 찔림 없이 자비롭게 죽여주든 말입니다.
바로 그럴 때“나는 인간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바로 반 컵의 물이었습니다.
그들은 한 마디 반항은 못했지만 반 컵의 물을 들고 독일인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그들 앞에서 이를 닦았습니다. 이빨은 인간만이 닦습니다.
그들에게 그 행위는 자기가 인간이라는 것을 나타낼 수 있는
가장 큰 저항이었고 그 저항의 힘이 생명의 힘, 존재의 힘이 되었습니다.
그 중에는 더욱 빅터 프랭클린이라는 의사는
운동장에서 주운 유리조각으로 살을 베며 수염까지 깎는 사람입니다.
(무엇으로 저항합니까? 돈, 명예, 정의) 그는 살아서 수용소에서 나온 자입니다.
또 한 사람 레빈스카라는 사람은
“저들의 음모를 깨달았을 때 나는 속으로 울려 퍼지는 생명의 소리를 들었다.
반드시 살아서 나갈 것이다. 절대 저들이 의도한대로 죽지는 않을 것이다.
끝까지 살아남을 것이다. 만일 죽는다 해도 저들의 뜻대로 짐승으로 죽어주지는 않겠다.”
그리고 그는 날마다 반 컵의 물로 자기 몸을 씻었습니다.
▶1. 우리 모두는 나는 인간이기를 고집하는 반 컵의 물이 있어야 합니다.
반 컵의 물이면 얼마든지 내 인생은 고귀한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2. 풍성한 물이 없다고 자신의 몸을 내 팽개치지 마십시오.
힘들다고 너머어지지 말고 없다고 존심 상해하지 말고
반 컵이래도 얼마든지 고귀한 인간이 될 수 있습니다.
▶3. 반 컵 가지고 몸을 닦는다고 손가락질 하지 마십시오.
그 자체가 아름다운 것입니다.
▶4. 반 컵의 물을 들고 죄와 싸웁시다. 그래도 싸웁시다.
그래야 인간입니다. 저도 부족합니다. 연약합니다.
그러나 반 컵의 물을 들고 목사이길 발버둥치고 있습니다.
▶5. 반 컵의 물은 소망입니다.
반컵의 물이면 얼마든지 내 안에서 영향력이 살아나고
예수그리스도의 에너지가 넘쳐흐르고 하나님은 자신의 일을 시작하는 겁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을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여러분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내 스스로 십자가 밑에 나가서 회개하지 않으면 십자가의 보혈은 아무 공로 없습니다.
누구든지 구원 받을 수 있지만 아무나 구원 받지는 못합니다.
자기를 존귀하게 여기는자 만이 구원받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그렇게 싸구려가 아닙니다. 예수의 에너지는 그런 자에게 넘칠겁니다.
둘째: 영향력은 약이고 독이다.
우리는 도구일 뿐이지 내 자체가 영향력이 아닙니다.
여러분 안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에너지가 빠져나가면 여러분은 그냥 세상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밖에 버려져 밟힌다고 했습니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내 안에 예수가 없다면 은혜가 없다면 사랑이 없다면
고전 13장의 말씀처럼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나는 빛이 아닙니다. 빛을 비추는 반사체일 뿐이지 내가 빛은 아닙니다.
영향력을 주신분도 그분이시고 그 영향력을 쓰시는 분도 하나님 이십니다.
나는 그저 청지기일 뿐입니다.
내가 소금이고 내가 빛으로 착각하면 내가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영향력은 약이면서 독이 될 수 있습니다.
➤대표적 인물이 삼손입니다.
그는 사사시대의 육신의 힘이라는 능력을 받은 사사입니다.
그의 가장 큰 착각은 자기가 능력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능력을 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삼손은 그 능력을 잘못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자
기를 증명하는데 사용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버림 받습니다.
이방에 끌려가 노리개감이 됩니다.
여러분이 능력이 있어야 쓰임 받는 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십시요
그릇이 준비되면 거기에 능력을 부어서 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문제는 능력을 부어주니까 사람이 교만하게 변하는게 문제입니다.
➤종려주일 예루살렘 성에 나귀타고 오르신 주님이 나귀를 탔는데
나귀가 너무나 신난 것입니다. 자기에게 사람들이 옷을 깔고 종려잎사귀를 흔들며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찬양하는 겁니다. 나귀는 신났읍니다. 나귀는 기분이 좋았습니다.
착각하지 마십시요 그위에 예수님이 타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마태복음 21:3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러면 즉시 보내리라.”
묶여있던 것을 쓰시는 주님입니다. 그 나귀를 주님이 안 쓰셨으면
그 나귀는 종려주일의 환희도 맛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풀어서 주님이 쓰시게 하십시요 주님이 쓰실 때 착각도 하지 마십시오
사람은 능력이 들어오면 착각하기 시작합니다.
자기가 잘나서 그런 줄 알아요 그래서 능력은 약이고 독입니다.
➤많이 가진게 약이면서 독입니다.
주님의 것인데 자기 것인 줄 알면 다 빼앗깁니다.
➤많이 배운게 약이고 독입니다.
똑똑해서 헌신하고 섬겨야 하는데 못 배운 자를 무시합니다.
➤믿음이 뜨거운게 약이고 독입니다.
교만해서 교주가 됩니다. 눈에 보이는게 없습니다. 영적교만입니다.
➤은혜가 약이고 독입니다.
은혜의 말씀은 내 안에 에너지가 되고 새 사람이되고 깨끗하게 하는
능력이 되지만 그것으로 끝이면 독입니다.
행치 않는 믿음은 죽어가는 질병이기 때문입니다.
➤목사라는 직분이 약이고 독입니다.
목사는 섬김의 직인데 기름부음 받은 자의 횡포가 참 많습니다.
권사 장로되면 직분이 독이 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영향력 있는 사람이 사고칩니다. 이유는 사단의 타겟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약한데서 강하여지고 지난 주 설교처럼 바울의 질병을
안고쳐주시는 하나님의 의도를 배우게 됩니다.
약한 자로 능력있게 영향력을 행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약하다고 비관하고 포기하지 마세요
CA의세계적인 교회가 새들백 교회입니다.
담임목사 릭워렌은 2만 명의 성도를 다스리는 능력 있는 목사입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언제 어디서 쓰러질지 모르는 간질증세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붙드셔서 여기까지 왔다고 고백합니다.
그가 그런 개인적인 장애를 극복하게 된 데는 어린 시절
그에게 큰 충격을 준 주일학교 선생님이 있었습니다. 4
학년주일학교 선생님인 가스 헌터(Garth Hunter)를 꼽았다.
주중에는 거대한 레드우드 나무를 벌목하는 것이 직업인데 헌터 선생님은
나무를 하다가 손가락 두 개를 잃었고 학교를 제대로 못 다녀서
글도 읽을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주일학교 시간에는4학년꼬마 학생들이
주일학교 교재를 대신 읽었고 그것을 듣고 가르치던 선생님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릭 워렌은 이야기합니다.
“그는 정말 예수님처럼 우리를 사랑해 주었습니다. 저는 그 선생님으로부터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차 있으면 어떤 장애도 극복할 수 있음을 배웠습니다.”
“오늘 제가 그 선생님 때문에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약한데서 오는 영향력입니다. 강해야만 쓰는 것아닙니다. 진실과 생명입니다.
감사절 설교한 거 생각나죠 감사하려면 훈련해야 한다고
숨는 훈련, 작아지는 훈련, 약해지는 훈련, 가난해지는 훈련
세째: 영향력을 흘려보내라
흘려보내지 않는 것은 다 썩어버립니다.
빛과 소금은 사용이 목적이지 보관이 목적은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지 교회의 빛과 소금이 아닙니다.
교회는 소금과 빛을 만드는 공장이지 여기가 목적이 아닙니다.
나가서 영향력을 행사해야 합니다.
지난 주일 우리교회 어느 남자 어린이가 저금통에 동전을 모아서
선교 급수헌금을 모아 제 방에 가져왔습니다.
그러면서 저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목사님 1억이 안되요"
1억하고 싶니? "네"하고 대답하는 겁니다.
그리고 새 저금통을 가지고갔습니다.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1억이면 학교와 교회를 동시에 지을 수 있는데
그 때까지 쉬지 않게 해주세요 작은 것으로 크게 일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게 그렇게 제게는 크게 보였습니다. 하
나님은 그 어린이와 저의 대화를 들었습니다.
어느 사회복지사가 쓴 글인데 마음이 짠했습니다.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는 저는 화상을 입고 지하철에서 구걸하며 생활하는
한 아주머니를 알게 되었습니다. 화상으로 흉측하게 변한 자신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을 만나 딸을 낳고 행복하게 살던 것도 잠시 남편이 병으로 죽고
어린 딸과 자신만이 남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주머니가 삶의 방편으로 택한 것은 지하철에서 구걸하는 일이었습니다.
힘든 삶이었지만 딸만은 정상적으로 키우겠다는 집념으로 묵묵히 힘든 길을 나서곤 했습니다.
그러나 자기 삶의 전부인 딸마저 시력이 점점 떨어져 결국 실명에 다다르고 마는
희귀병에 걸렸는데 아버지로 인한 유전병이라고 했습니다.
그 뒤 아주머니는 딸의 수술을 위해 한 푼, 두 푼 돈을 모았습니다.
하루는 제가 아주머니의 집을 방문하고 돌아올 때, 장롱 깊숙한 곳에서
가지고 가라며 비닐봉지를 꺼내놓았습니다.
봉지 안에는 100원짜리 동전이 수북이 쌓여있었습니다.
“제가 구걸하면서 1000원짜리는 생활비로 사용하고,
500원 짜리는 딸의 수술비 마련을 위해,
100원짜리는 나보다 어려운 노인분들을 위해 사용하려고 모았습니다.”
복지관에 와서 혹시라도 틀렸을까 해서 세 번을 세었습니다.
그 동전은 총1006개, 10만 6천원이었습니다.
복지관의 후원자 가운데 10만원이 넘는 돈을 후원해 준 경우는 많지 않지만
이렇게 정성스럽게 모아준10만 6천원이라는 돈 보다는
1006개의 동전으로 기억하고 싶습니다.
동전을 세어 까맣게 된 손을 함부로 씻지 못했습니다.
청년부는 계속 헌혈운동을 시작으로 작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을
꾸준히 하려고합니다. 서울역 시청에 나가서 구걸하는 홈레스들에게
작은 선물을 나누어주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영향력을 꾸준히
실천하는 청년부이기를 바랍니다.
곧 아이티에서 심장병 어린이들이 옵니다.
우리 청년부 예배에 초대하여 함께 떡볶이도 먹고 동물원에 데리고 가려고 합니다.
제가 늘 쓰는 글입니다.
“남는 것으로 베풀지 말고 있는 것으로 나누라”
영향력은 능력이 아니라 사명입니다.
내 것이 아니라 주신 분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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