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영(2)
담을 넘은 축복
(창세기 49:22-26)
오늘 본문은 요셉의 축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참 복 받은 자입니다.
아버지 야곱은 요셉에게 축복해 주십니다.
저는 우리 젊은이들이 이런 복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본문 22절에 “샘 곁에 담을 넘은 무성한 가지”라고했습니다.
그래서 설교제목이 담을 넘은 축복이라고 했습니다. 이 축복이 어떤 축복입니까?
축복의 사이즈가 S,M,XL,2XL 그 이상 무제한급의 축복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요셉이 꿈의 사람이라고 하지만 요셉은 축복의 사람입니다.
번영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완성시킨 자 입니다. 요셉에게서 배우십시오
이렇게 야곱이 요셉에게 손을 얹고 기도한 것처럼 여러분도
스스로 이런 번영의 복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요셉의 번영은 다음의 세 가지 공식이 있습니다.
첫째: 담을 넘는 삶을 살라
요셉은 아버지처럼 하나님이 나타나 주신 적도 없습니다.
축복의 선언을 말씀해 주지도 않았습니다. 어떤 축복의 예언도 없었습니다.
내가 너를 어떻게 쓰겠다, 이런 것도 없습니다.
그래도 그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쓰임 받은 축복의 사람입니다.
담이라는 것은 소유권의 한계입니다. 내 것이라는 표시로 담을 쌓습니다.
담은 한계와 경계입니다. 그릇이라는 말이죠
우리는 담장 안에서 내 것으로 사는 자들입니다.
그릇 대로 복 받고 그릇 대로 쓰임 받는 존재입니다.
자고로 담을 쌓는 문화는 망합니다. 그러나 길을 만드는 나라는 흥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을 유심히 보면 한계 이하의 사람,
딱 그것만 하는 사람, 그것 이상으로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번영의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담을 넘는 축복을 받기 원한다면
담을 부수어야 합니다. 한계를 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누구든지 품을 수 있고, 어떤 상황도 품을 수 있고,
어떤 형편에도 거할 줄 아는 그런 울타리가 없는 자입니다.
상황마다 울타리 치는 사람 보면 저는 잘 접근 안합니다.
울타리가 없어서 누구든지 들어오고 누구든지 포용하는 사람이 담을 넘는 요셉 같은 자입니다.
유대인들은 담이 높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담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이방인들을 멸시하고, 개처럼 취급하였으며 환자들을 경멸하며
하나님의 징계라고 하고, 죄인들을 율법의 잣대로 재서 율법으로 심판하는 자들입니다.
스스로 율법의 권위자라고 하며 접근할 수 없는 그런 울타리가 있습니다.
저도 이런 사람들 정말 싫어합니다. 바리새파 사두개파 끼가 있는 사람들.....
그러나 예수님은 울타리가 없는 분이십니다.
이방인이라 할찌라도, 여자와 과부와 고아와 어린이와 문등병 자와,
죄인을 향하여 죄인들아 내게로 오라, 그 누구라 할찌라도
예수님 안에는 담이 없습니다. 담을 치는 자는 그 담안에 갖혀 반드시 성숙하지 못하며
거기가 그들의 무덤이 됩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세요 요셉처럼 사십시오
요셉이 그런 자입니다. 노예로, 죄수로, 총리로...어떤 자리에서든
사람을 품는 자라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울타리를 쳐도 그 울타리를 넘는 삶을 삽니다.
노예라는 담이 쳐져도 그는 보디발의 집 전체를 관하는 관리인이 됩니다.
죄수라는 억울한 울타리가 쳐져도 그 담 안에서 사람의 묶인 것을 풀어주며
간수가 모든 열쇠를 맡길 정도였습니다.
요셉은 도저히 불가능한 한계를 뛰어넘은 자입니다.
형제에게 버림받았습니다. 충성했던 보스 보디발에게 버림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한계를 뛰어넘은 자입니다. 진리가 그 안에 있으면 진리 되신 예수그리스도의 영이 그 안에 있으면 묶이지 않습니다. 자유합니다. 세상이 나를 담을 쌓으려고 하고, 울타리를 치려고 해도, 나를 묶지를 못합니다. 바울도 그것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로마서8:38-39절 /“내가 확신 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오직 예수 안에만 묶이는 것입니다. 다른 것으로 묶이지 마십시오 세상적인 것으로 담을 쌓지 마세요 묶여야 할 것에 묶이고 묶여서는 안될 것에는 묶이지 마십시오
자기 담을 못 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참 안타깝습니다. 늘 그 문제 부딪치고 자기 스스로를 묶어서 거기를 넘지 못하는 안타까움 입니다. 요셉은 이런 담을 다 뛰어넘은 자입니다 요셉만큼 고생한 자가 어디있습니까?
물에게서 배우라는 글을 읽었습니다. 요셉이 생각났습니다.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겸손’ 막히면 돌아가는 ‘지혜’ 구정물까지 받아주는 ‘포용력’ 어떤 그릇에도 담기는 ‘융통성’ 바위도 뚫는 ‘인내와 끈기’ 폭포처럼 투신하는 ‘용기’ 유유히 흘러 바다를 이루는 ‘대의’
담을 뛰어넘은 삶을 사는 자들의 특징입니다. 제발 “거기를 못 뛰어넘는 구나” 이런 말을 듣지 않기 바랍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성령의 사람’입니다. 한계와 울타리에 부딪치는 우물안의 개구리에서 성령의 사람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어야 담을 넘는 축복이 채워질 줄로 믿습니다.
넘으세요. 거기에서 반복하지 마세요. 성령님께 간구하세요.
도움을 청하세요. 예수님의 말씀처럼 ‘자기 자신을 미워하는 자
자기의 그릇을 깨고 더 넓히는 자’ 이런 도전이 있기를 축원 드립니다.
둘째: 샘 곁에서 살라.
식물의 생명은 땅입니다. 열매 맺는 나무가 품종이 좋으냐 나쁘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어느 땅이냐는 것입니다. 토질은 반드시 수분과 함께갑니다.
물을 공급받지 못하면 말라서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합니다.
요셉은 자신의 인생을 샘 곁에 뿌리내렸다고 했습니다.
시편 1편은 이야기합니다 마치 요셉의 삶을 풀어서 쓴 시편 같습니다.
1:3절에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풍성한 복은 풍성한 샘물에 뿌리를 두는 자입니다 즉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를 둔자입니다. 늘 메마르지 않습니다.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 뿌리를 두지 않고 스스로 샘을 파려는 자가 있습니다.
예레미야2:13-14절에 /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수고하는데 물이 고이지 않는 사람 많이 봅니다. 성경은 성경이 설명해줍니다. 시편 127:1-2절에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있음이 헛되도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샘 곁에 살지 않는 다는 것이 얼마나 헛고생이며 얼마나 허무한 것인가를 깨닫는 것이 진짜 똑똑입니다. 샘 곁에 살지 않은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없이도 살아보려고 애쓰는 것 자체가 고생입니다. 번영이 아닌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겁니다.
성실하다고 다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성실하다고 다 복 받으면 얼마나 좋은 세상입니까? 열심히 일하면 다 되던가요?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 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르리 없건마는” 천만의 이야기입니다. 오르다 죽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엄홍길 대장이 히말라야에 동료 대원 시체를 찾으러 가서 베이스 캠프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산은 산신이 오르게 허락을 하는 자만 오를 수 있다” 의미있는 말입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은 하나님의 주권에 있습니다. 하나님 곁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며 예수 라는 그분의 에너지로 살아야 사는게 인생입니다. 하늘이 열려야 사는 법칙 이것이 이 세상이고 인간의 한계입니다. 그래서 기도해야 합니다.
셋째: 이웃을 복 받게 하라
요셉 옆에 있는 사람은 다 복 받았습니다. 보디발이 복 받았습니다. 감옥 안에 있는 사람들이 복 받았습니다. 애굽이 복 받았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요셉의 가족이 복 받았습니다. 더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습니다. 나 하나만 잘된다면 반드시 그 복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 복은 유사상표입니다.
요셉은 하나님께 담장 넘어 풍성한 가지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하나님께서 준비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한계 넘는 축복의도구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 열매와 가지가 담장 넘어로 뻗어나갑니다.
*나 하나 복 받는 존재로 머물겠다면 틀림없는 사실은 반드시 나 하나도 복 받지 못합니다. 아니 그 복은 오래 못갑니다. 비 정상적인 복이기 때문에 황의 원인이 될 것입니다. 나 하나로 주변이 복받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번영의 복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나 하나 축복하는게 목적이 아닙니다.
반드시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신다는 것을 믿으세요.
축복받는 자가 아니라 축복의통로로 쓰임받기 원합니다.
*축복의 MONO PLAYER가 아니라 MULTI PLAYER가 되십시오
공부해서 남주냐? 돈벌어서 남주냐?
네 남 주어야 합니다. 우리교회 하나 부흥 하는게 목적이 아닙니다. 우리가 부흥해서 주변이 복 받게 해야 합니다.
주변국가가 잘 먹고 잘살게 해야 합니다. 가난한 나라가 우리교회 때문에 풍성해져야 합니다.
이런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로 이웃의 복의 도구로 사용하소서’
“하나님 나라의 도구로 사용하소서”
이런 간절한 기도와 응답이있기를 축원합니다
이것이 번영이요 형통입니다. 요셉처럼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번영의 주인공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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