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지혜는 큰 것을 뽐내고, 작은 것은 거들떠보지 아니합니다.
세상의 지혜는 드러나는 것을 자랑하고, 감추인 것을 무시합니다.
세상의 지혜는 강한 것을 예찬하고, 약한 것을 멸시합니다.
세상의 지혜는 높은 것을 열망하나, 낮은 것은 저버립니다.
세상의 지혜는 늘 더 크고 많은 것을 좋아하며, 드러난 것을 추구하고, 더 강한 것과 더 높은 것만이 가치 있는 것이라고 말을합니다.
그리하여 세상의 지혜가 드러나는 곳마다 인간의 자기 자랑이 요란하게 내뿜어지고 있으며, 철저한 경쟁의식 속에서 자랑과 수모, 시기와 다툼, 우월감과 열등감이 교차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세상의 지혜가 자기 자랑을 하는 곳에는 늘 인간을 비인간화시키고 소외시키는 갈등과 분쟁이 끊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지혜란 어떠한 것입니까? 하나님의 지혜는 세상의 지혜와 같지 않습니다. 아니, 세상의 지혜로는 하나님의 지혜를 결코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미련함이 인간의 지혜보다 더 지혜롭고, 하나님의 연약함이 인간의 강함보다 더 능력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죄인의 자리에 찾아오신 주님을 알기에 작은 것의 아름다움을 예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십자가에 달린 ‘영광의 주님’을 알기에 보이지 않는 감추인 것의 소중함을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인간의 가능성이 아니라, 한계성을 깨닫기에 겸손과 낮아짐의 위대함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넘친다는 사실을 알기에, 연약함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하나님의 공의보다 더 큰 그분의 사랑을 알기에 지배가 아니라 섬김이 지닌 미움과 버림의 비밀을 몸으로 깨닫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 그분을 아는 것이 하나님의 지혜를 소유하는 것임을 안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께서 도리어 자기 자랑하는 세상의 어리석은 지혜를 미련케 했다.”
인간의 지식과 지혜가 아무리 높고 위대하다고 하더라도 지혜의 근원인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인간의 지혜란 실상은 어리석음(시 14:1)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새로운 지혜의 법을 제시하셨습니다. 십자가의 도를 선포함으로써 마치 어리석어 보이는 역설적인 방법으로 믿음으로 그분에게 나아가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인간의 자기 지혜의 자랑이나, 자기 행위의 업적을 뽐냄으로 나아가는 자리가 아니라, 겸손하게 낮아진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들에게 하나님의 지혜를 선물하십니다.
진정한 지혜자란 누구인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오히려 감추인 하나님으로 믿으며, 멸시와 수치의 십자가의 형틀을 하나님의 계시의 현존으로 알고 기뻐하며 감사하고, 오늘도 성령의 능력은 인간의 연약함에서 나오며, 하나님의 지혜는 인간의 미련함에서 난다고 믿는 사람들, 곧 자기의 연약함과 어리석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리스도 안에서 자랑함으로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만이 높임을 받기 원하는 사람들이 아닌가라고 생각합니다.
정말로 작은 것이 아름답고, 감추인 것이 소중하며, 낮아진 곳에 풍성함이 있고, 연약한 곳이 능력의 자리인 것을 깨닫는 하늘의 지혜를 지닌 지혜자가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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