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름 휴가에 가족들과 함께 주일 예배를 새들백교회(릭 워렌 목사)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오후에 가든그로브의 (전)크리스탈교회(로버트슐러 목사)였으나 이제는 크리스탈 성당이된 그곳을 다녀왔다
세 번째 방문이다.
첫 번째 방문은 32년 전 대학교 4학년 때이며 두 번째 방문은 목사안수 받고 미국에 오기전이다
그리고 이번이 가족과 함께 방문한 세 번째다.
교회 정문을 들어서는 순간 우리 식구들이 '악'하고 놀라 만큼 감탄이 저절로 나오는 유리 1만644장의 큰 유리만으로 지어진 교회 외형건물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파킹장에 들어서니 두 대의 차밖에는 없다 중국 경비원이 지키고 있을 뿐이다. 늘 관광객들과 교회 행사와 직원들 차로 분주하던 모습은 완전히 사라졌다. 썰렁 그 자체다.
슬프다...내 교회는 아지만 교회가 이렇게 되었다는 것이 슬프다......
교회 안을 들여다보니 그 웅장하던 교회안의 의자와 세계 최대 규모의 파이프 오르간과 강단에서 흘러내리는 분수가 회중석을 흘러 나가는 모든 시설들이 다 치워졌다. 공사중이며 내년쯤에 미사를 드린다고 한다.
작년 10월이었다 교회가 재정 파산을 신청하여 매각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결국 이 교회는 재정의 어려움을 이기지 못하여 캐톨리게 매각한 것이다.
캐톨릭 교구 지도자들은 가든그로브의 성골룸반성당에서 열린 성직자 서임식에서 수정교회를 가톨릭 대성당(크라이스트 캐세드럴&파더 크리스토퍼 H. 스미스)이란 새 이름으로 부르기로 했다고 밝혔다.
교회를 들어서는 정문에 간판이 그렇게 적혀있었다.
참 아이러니컬 하다
바른 믿음이든 바르지 못한 믿음이든, 큰 믿음이든 작은 믿음이든...자기가 믿고 신뢰하는대로 된다
확실하다
30년 전 일어 난 사건이다.
이 교회의 담임이던 로버트 슐러 목사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역사적인 LA방문을 했을 때의 사건이다.
TV가 생중계를 하다시피하며 미국 전역이 온통 교황에 관심이 쏠렸다. 슐러 목사는 교회에 대형 스크린을 설치해 자기교회 신자들로 하여금 교황의 야외미사 집전 광경을 보도록 했다. 그 뿐이 아니었다. 미사 참례를 원하는 교인들을 위해 버스까지 대절해놨다.
당시로선 그야말로 충격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과연 제정신의 목회자인가?
더 아이러니컬한 것은 슐러 목사는 수정교회를 건축하고 교회이름을 영어로는 ‘Crystal Cathedral’이라고 명칭하였다. 원래 개신교에선 아무리 규모가 커도 ‘커서드럴’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가톨릭이나 성공회에서 주교좌 성당을 일컫는 말이기 때문이다. 왜 교회이름을 캐톨릭식의 이름으로 지었을까?
슐러 목사는 교황청을 방문하기도하며 자신의 교회 사진을 교황에게 보여주기도 하였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먼훗날 그 교회는 명칭한 그대로 캐톨릭 성당이 되었다.
말한 대로 되는거 아닌가? 교회정문에 붙여놨던 이름대로 된 것 아닌가?
이스라엘백성이 출애굽하여 광야에서 입 버릇 처럼 말한 것 "차라리 우리가 광야에서 죽는 것이 좋겠다" 는 그 원망과 불평도 믿음은 믿음이다. 결국 하나님은 그렇게하여 주었다. 그들의 말대로 광야에서 모두 죽게하여 주었다.
교회간판이 실제 교황과 천주교가 주인이 된 것이다. 그리고 더 재미있는 것은 천주교에게 주기를 슐러 목사도 원했다.
교회가 더 이상 재정 부담에 허덕여 파산을 결정하고 매각하기로 할 때 채프먼대학과 가톨릭 오렌지 교구가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대학 측은 더 많은 돈과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해 대학이 교회를 구입하기로 결정되려는 순간이었다. 미국은 종교건물을 구입하거나 매각할 때는 법원의 결정이 반드시 있어야한다. 그런 상황에서 슐러 목사가 법원에 서한을 보냈다.
“대학이 인수하면 교회는 캠퍼스로 변하게 됩니다. 그러나 가톨릭은 이 자리에서 영원히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고 사역에 헌신할 것입니다. 나는 가톨릭이 인수했으면 좋겠습니다.”
카톨릭을 경쟁자가 아닌 동반자로 선택한 것이다. 법원도 이 편지에 감동을 받았는지 카톨릭을 최종 인수자로 판결했다.
예전에는 보지 못했지만 이번에 가서 본 것 중 교회 뒷마당에 장지가 마련되어있었다.
납골당과 아울러 묘소들이 있다. 아주 초호화스러운 묘소들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 교회 중진들이나 공로자들의 개인이나 가족 묘소다. 자신이 헌신한 교회에 묻혔지만 이제는 자신들의 교회가 더 이상 아닌 남의 땅에 그들은 잠들게 된 것이다. 그들의 헌신과 공로는 무너지고 이제 그저 작은 공간에 누워있는 것으로 만족해야한다.
이 또한 아무것도 모르는 죽은 자들의 슬픔이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면 같은 역사를 반복한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의 이야기다.
이제 다시는 LA에 와도 여기를 찾을 일이 없다 우리 식구들을 교육 시키기 위하여 마지막 들렸을 뿐이다.
자기 믿음대로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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