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주간 목회 칼럼

광야

안혜권 목사 2013. 4. 13. 05:03

 

 

 

 

광야

    광야라는 단어는 성경에 많이 나오는 단어입니다. 그러나 그 단어가 주는 의미는 그렇게 좋은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 광야를 40년이나 걸었습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40일 금식기도를 하였습니다. 세례 요한도 광야에서 훈련되어진 인물이고, 예수님이 사역하시기전 광야에서 금식을 하며 광야에서 시험을 받은 곳입니다. 먼저 광야는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입니다. 아니, 살기보다는 지나가기도 싫은 과정의 길입니다. 추운 곳이고, 낮에는 살인적인 더위가 있는 곳이고, 식물이 뿌리를 내리고 자라서 열매를 맺을 수가 없는 곳이어서 먼지와 바람만 일어나는 곳입니다. 사람들이 결코 사랑하지 않는 장소입니다. 다른 말로 이야기한다면 우리가 원하는 방식대로 살 수 없는 곳입니다. 꿈이 없고 비젼이 없는 곳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광야는 성경에서 하나님이 쓰시는 학교처럼 많은 일들이 이 광야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광야라는 히브리의 원래 단어는 ‘미드 바아르‘라고 하는데 그 뜻은 ’말하다‘라는 뜻입니다. 눈으로만 보아서 평가할 수 없는 곳입니다. 마음으로, 그리고 생각으로, 더 나아가서는 영으로 그 광야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고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그 광야에서 말하는 사단의 음성도 들어야합니다. 광야 속에는 멧세지가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의 삶에도 광야 같은 환경이나 광야 같은 시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광야는 우리가 져버리고 싫다고 피하기만 할 수는 없는 장소입니다

 

우리는 이 광야에서 다음의 세 가지를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광야에서 우리는 넘어지고 실족할 겁니다.

    첫째는 광야는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이면서 마귀의 거처이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를 광야로 부르십니다. 반드시 그곳에서 만나주십니다. 그래서 때로 우리는 광야에서 하나님을 깊게 체험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알아야할 것은 그곳에는 반드시 사단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나느냐 사단을 만나느냐 이것은 나의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불평과 원망과 불만족에 대한 몸부림으로 하나님과의 만남이 가려지고 사단의 장난에 휘둘리다 고생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둘째는 광야는 하나님께서 율법을 계시한 곳이며 사단의 시험장소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백성들을 광야에 모아 하나님의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성막을 주셨습니다. 율법과 성막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광야 속에서 인생은 하나님을 찾으며 하나님을 만나는 길을 찾습니다. 광야는 인간을 복되게 하며 삶의 노하우를 알게 하며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삶의 해답을 찾는 곳입니다. 또한 광야는 사단이 시험하는 장소입니다. 사단의 시험의 내용은 ‘네 힘으로 살아보라’는 시험입니다. 즉 자기 증명입니다. 광야에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찾느냐 아니면 자기 스스로 살아가는 자기증명의 길을 찾느냐 하는 갈림길의 장소입니다.

    셋째는 소명을 받는 장소이기도하면서 불평과 원망의 장소이기도합니다. 모세는 살인죄를 범하고 인생의 광야시기를 만나면서 광야의 떨기나무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다윗은 광야의 도망자 생활을 13년 지내면서 하나님의 소명과 아울러 훈련을 받습니다. 그러나 광야에서 40년 동안 원망과 불평만 하다가, 고생은 고생대로하고 죽어가는 인생은 불쌍한 인생입니다.

‘광야.’ 이곳은 학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골라내어 선별하는 시험장이면서 그의 사랑하는 백성과 사명자들을 훈련시키는 학교입니다. 그래서 사단의 방해도 많은 곳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에 광야가 있었습니까?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어떤 유익이 있었습니까? 아니면 어떻게 그 광야에서 망가졌습니까? 광야는 앞으로 꾸준히 우리 앞에 나타납니다. 계속 공부하셔서 실력을 갖추십시오.